과거 전시

<굽 과 합>

이능호 박성욱

2024년 2월 7일(금) – 3월 14일(금)

11:00- 18:00 (일요일 휴관)

기획: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

<전시서문, 수애뇨339>

굽은 그릇의 밑바닥에 붙은 나지막한 받침을 가리킨다. 본디 다른 존재를 받쳐주거나 돋보이도록 만들어졌기에 다른 존재와 더불어 있어야 그 가치를 발한다. 하나의 작은 조각을 가리키는 편(片)도 홀로 존재한다면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부일 뿐이다. 작은 편들이 모이고 서로 어우러져 하나를 이룰 때 그 가치를 발한다. 이는 사람(人)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혼자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며 합을 맞추어야 살만한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시장 입구에 놓인 이능호 작가의 쌓인 굽과 박성욱 작가의 분청사기 합은 이번 전시 주제를 에두르지 않고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 안에는 굽과 합이 작품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두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통한 심상의 굽과 합이 존재할 뿐이다.

얼핏 보면, 검은 쇳덩어리로 보이는 이능호 작가의 <집>은 전통옹기 제작 기법인 타렴질로 흙가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두들겨 빚은 작품이다. 커다란 씨앗이나 알의 형상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작품은 위가 막히고 속이 텅 비어 있는데 이는 앞으로 커질 수 있는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집-그 이후>는 씨앗이 발아하거나 알이 깨지면서 새로운 생명체로 움트는 단계를 형상화한 것으로 덩어리와 투각의 형태를 동시에 담고 있다.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작품에서 생명체는 시간이 흘러 날아오르며 벽에 걸린 <투각>으로 변신한다. 생명이, 삶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능호 작가의 손으로 빚어낸 <굽>과 생명의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효율과 성과를 강조하며 사람을 개별화시키고 고립시켜가는 우리 사회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이어야 하는가를 반추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도자의 깨어진 작은 조각, 사금파리에서부터 시작된 박성욱 작가의 작품 <편(片)>은 조각마다 다 다르다. 크기도 모양도 색도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흙을 수집하여 반죽하고 도판을 만들어 작은 조각으로 자르고, 조각 조각을 화장토로 분장한 후에 장작가마로 오랜 시간 소성하는 정성스러운 작업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화장토 농담의 변화, 종이와 맞물린 흔적, 장작불이 지나간 불의 자리를 머금으며 자기만의 빛을 간직한 수천 개의 작은 흙 조각들은 작가의 섬세한 손을 통해 서로 합을 이루어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푸른 빛의 달, 단단하고 곧은 자작나무 숲을 도자로 수놓는다. 눈을 연상케 하는 자작나무 특유의 하얀 수피 무늬가 새겨진 편들에서는 담백하면서도 묵직한 겨울이 느껴지며, 손잡이가 달린 고가구의 서랍장에 담긴 편들에서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소환하여 보관하는 듯하다.

이렇듯 각기 다른 편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편들이 합을 이룬 작품의 모습에서 사람의 그리고 사람이 사는 세상의 모습을 본다. 얼굴도 체구도 성품도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각기 다른 인생에서 빚어지고 깎이고 구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사람들은 합을 이루고 세상을 만들어간다. 편, 하나하나는 보잘것없는 작은 조각이었지만 하나의 작품을 이루듯, 사람 하나하나는 먼지와도 같은 미비한 작은 존재이나 합쳐서 세상을 근사한 작품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합은 여럿이 한군데 모인다는 뜻도 갖지만 뭔가를 담는 뚜껑이 있는 그릇을 의미하기도 한다. 합에는 무엇이든 담아 수용하고 간직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와 다른 마음을, 생각을, 뜻을 수용하고 간직할 수 있는 깊고 거대하고 다양한 합을 꿈꿔 본다.

작가 소개

전시 작가

이능호(b. 1965)는 1991년 국민대학교 미술대학 공예미술학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대학교 졸업 후 3년 뒤인 1994년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타렴 기법을 이용한 대형 옹기를 선보인 뒤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전통옹기 제작 기법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흙의 물성을 탐구하며 전통 도자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는 정제된 동시에 실험적인 형태로 흙의 본질을 작품에 담아낸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부안 무빙》(변산해수욕장, 2023), 《집》(엘케이트 갤러리, 2021), 《집》(아트링크, 2019) 등이 있다. 《Korea Craft Design Foundation x Liaigre London》(런던, 2024), 《사용하다 사유하다》(예올 북촌가, 2024), 《라트비아 도자비엔날레 국가초대전》(라트비아, 2023), 2022 밀라노 디자인위크 한국공예특별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밀라노,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한 바 있다. 주요 소장처로는 호암 미술관, 제네시스 라운지(호텔 신사 서울), 경기도자박물관 등이 있다.

박성욱(b. 1972)은 1997년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를 도자 전공으로 졸업하고 2002년 동대학원에서 도자공예 석사를 마쳤다. 한국 분청사기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해온 그는 전통적인 도예 기법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형태의 작업들을 선보여왔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놓여진 분청》(갤러리담, 2024), 《분청》(노영희 그릇, 2024), 《片》(KCDF 갤러리, 2020) 등이 있다. 《법고창신》(제주공예박물관, 2024), 《굽이 있는 그릇》(노영희의 그릇, 2023), 《MOONJAR》(프린트 베이커리, 2023), 《MOON》(크롬웰 플레이스,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한 바 있다. 호림 박물관,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 중국 경덕진 국제도예전시관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 기획: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KADA Creative Lab, 대표: 전혜정)

한국 출신 예술가들의 국내외 활동을 지원하는 카다 크리에이티브 랩은 설립 이후 동서양 간의 문화교류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왔다. 전혜정 대표는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하는 런던 아시아 영화제(London East Asia Film Festival)의 설립자로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영화의 독창성과 예술성을 유럽에 소개하는 데 힘써왔으며, 특히 런던을 중심으로 아시아 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풍부한 문화예술계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예술가들과 협력하며, 새로운 시각과 도전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국제 무대 진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