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공유하는 평면과 소거>

유한이 개인전

2026년 4월 23일(목) – 5월 20일(수)

10:30- 18:00 (일요일 휴관)

-수애뇨339  <전시 서문> 중에서-

유한이의 작업은 한지 위에 정교하게 그어진 격자에서 시작된다. 자로 나누어진 평면은 건축 도면이 연상되는 기계적 질서를 갖지만, 그 위를 채우는 동양화 안료의 층은 균일한 구조 위에 감각의 흔적을 남긴다. 이처럼 작가의 작품은 처음부터 질서와 감각, 구조와 흔적 사이의 긴장 위에 놓여 있다.

이번 전시 《공유하는 평면과 소거》는 한국의 아파트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반복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특히 동일한 평면을 공유하는 주거 형태는 한 시대의 산업적 조건과 생활 방식을 반영하며, 수많은 개인의 삶을 일정한 틀 안에 수용해왔다. 작가는 이러한 균질한 구조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차이와 감각의 균열에 주목한다. 작가는 비슷한 구조의 집으로 이주한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으로,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지점을 포착한다. 동일한 평면은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는 장치가 되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삶의 흔적으로 채워진 현재의 공간은 이질적인 감각을 발생시킨다. 이때 평면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이 겹쳐지고 어긋나는 심리적 장치로 작동한다. 작가는 잠실주공5단지의 도면과 같은 한국 아파트의 초기 모델을 바탕으로, 특정할 수 없는 시간과 감각을 화면 위에 배치한다. 만화적 기호, 기하학적 도형, 그리고 불완전하게 남거나 지워진 이미지들은 하나의 서사를 명확히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불분명한 기억의 상태를 드러낸다. 이 이미지들은 그려진 것이면서 동시에 지워진 흔적으로 남아, 화면 위에서 생성과 소거의 과정을 반복한다.

작품에서 여러 번 걸쳐 쌓아 올린 옅은 색층은 건축적 구조의 단단함을 흐리게 만들며, 정적인 공간에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진동을 스며들게 한다. 채워짐과 지워짐이 교차하는 이 과정 속에서, 단일한 평면은 더 이상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여러 시간과 기억이 중첩된 유동적 장면으로 전환된다. 《공유하는 평면과 소거》전은 우리가 공유하는 동일한 구조의 공간이 얼마나 서로 다른 기억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 동시에 재건축과 개발 속에서 사라져 가는 익명의 삶과 시간들을 호출하며, 지워짐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각의 잔여를 응시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동일한 구조 속에서 각기 다르게 축적된 삶의 층위를 드러내며, 우리 모두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어떤 평면을 조용히 환기시킨다.

-유한이. <작가 노트> 중에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당대의 산업 환경과 생활상을 반영하며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생활 반경이 작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는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주거 공간의 동일성은 동네를 벗어나 먼 곳에 위치한 집에 들어서며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잠깐의 친숙함, 안정감 이후 익숙한 실내와 다르게 채워진 탓에 유독 낯섦과 이질감이 느껴진다. 일정한 틀은 그 내부를 변주하는 요소들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어쩌면 우리 시대 대다수의 주거 틀을 제공하는 아파트는 균질성 속의 이질성을 더욱 강조하고, 요구하는 듯하다. 동일 평수 동일 구조의 공간을 채우는 삶의 내부는 때로는 상상 이상으로 천차만별이다.

작가 소개

유한이(Yoo HanEy)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경민현대미술관,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중앙홀 갤러리, 로운갤러리, 갤러리더플로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세종문화회관, 갤러리밀스튜디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아트레온 갤러리,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수애뇨339 등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