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모래의 시간
구나연(미술비평가)
흙의 결합력이 약하면, 돌은 물론이요 점토도 날지 못할 미풍이 불어도 모래는 일단 날아올랐다가 다시 낙하하면서 바람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땅의 형성은 불가피한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불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넘실거리는 한, 모래는 토양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어다닐 것이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중에서
아베 코보(安部公房)가 쓴대로 모래가 지표를 멸망시킨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모래는 언제부턴가 우리의 일상에서 위협적 미물이 되었다. 만일 모래가 바람을 타지 못한다면, 먼지와 하나 되지도, 황사로 하늘을 뒤덮지도 못할 것이다. 모래는 바람과 공모하여 먼지와 결합하고 우리의 시계(視界)와 색을 지배한다. 모래의 색깔로 보이는 세상이 있고, 먼지의 색깔로 보이는 세상이 있다. 세계의 풍경은 바뀌었고, 우리는 그 풍경의 맨 끝을 작은 모래와 먼지의 촉감으로 읽는다.
하진은 이 세계의 풍경 끝에 소실점처럼 쌓인 모래를 모은다. 도시의 찌꺼기가 되고 먼지가 되어 끊임없이 부유하는 모래는 하진의 작업 안에서 잠시 자신의 형체와 시간을 드러낸다. 이는 모래 구덩이에서 결코 빠져나가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처럼, 벗어날 수 없는 도시 속에서 모래가 흐르고, 날고, 모이며 만들어낸 조용한 서사이다.
모래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산물인 그대로 오랫동안 문명의 질료로 사용되었다. 자연과 문명의 중간에서 모래는 이 둘을 매개하고 붙이고 굳히고 또 허물어진다. 인간의 거주를 기점으로 한 도시의 구획에서 모래는 지층과 같이 벽을 세우고 높이는데 일조한다. 하진의 이전 작업인 <위장(僞裝)>이 거대한 벽을 만들어 그 내막을 사유했듯이, 이번 전시의 <잔여(殘餘, remains), 2018>는 바닥에 모래로 벽을 그리고 도시의 구획 사이로 사라지는 것들을 잠시 붙잡는다. 기실 바닥의 벽이란 있을 수도 없고 벽도 아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벽돌의 패턴으로 정연하게 펼쳐진 일종의 지도와 유사하지만, 모래로 그린 지도는 계측된 규율과는 달리 불안하고 조금씩 그 모습이 변화하는, 그야말로 움직이는 지도이다.
규칙적인 패턴은 자연의 공간을 사회와 도시의 것으로 바꾼다. 패턴에 따라 구획이 지어지고, 패턴에 따라 벽이 세워지며, 패턴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인다. 촘촘한 도시에서 장소는 사람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장소를 중심으로 사람이 움직이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불순물처럼 모래와 먼지가 보이지 않는 곳에 쌓여간다. 도시의 단단한 패턴 속에서 바람과 풍화에 의해, 생산과 소비에 의해 길가 구석 곳곳에, 우리의 일상 주변에, 날리고 쌓이는 모래와 먼지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또 사람에서 나온 부유물이다.
<잔여>는 그 제목과 같이 이렇게 쌓인 작은 모래와 먼지를 수집하고, 그것으로 무용(無用)의 벽 혹은 낯선 지도를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선명하게 자신이 온 곳을 스스로 발화하고 있다. 공장이 밀집한 곳, 재개발을 위해 허물어진 곳, 한산한 주택가, 어디인가에 따라 모여든 모래는 색깔도 입자도 다르다. 모래의 작은 단위는 <잔여> 안에서 동시대의 삶이 토해내는 수많은 성격을 명징하게 떠안고 있다. 우리는 바닥에 놓인 모래의 벽을 보며 그것이 무엇의 부산물인지 유추한다. 그리고 어디에서 온 모래이건 결국 벽의 세계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이라는 것, 나아가 <이주하는 모래>가 벽의 세계 이전과 이후 모두를 아우른다는 성찰에 이르게 된다.
<잔여>가 벽의 세계 이후, 즉 인공의 도시라는 거대한 구조에서 부서지고 흩어져버린 모래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남겨진 산수(unexpected landscape), 2018>와 <결(waves), 2018>은 벽의 세계 이전의, 즉 자연적 상태에 대한 증언을 담는다. 이에 대해 하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이를 조금씩 기울이면 흙먼지들이 어떤 결들을 만들어내는데, 내 머릿속에 있는 전형적인 수묵 산수의 이미지이다. 종이를 기울이는 각도와 속도 종이를 구부리는 정도에 따라 흙의 결이 다르니, 매번 내 시야에 펼쳐지는 장관을 혼자 보기 아깝다.”
이 추상적이며 전통적이고, 동양적이며 표현적인 지표들은 모래와 먼지가 만들어 놓은 모호한 흐름의 흔적이다. 그것이 남긴 ‘장관’은 놀랍도록 자연적 이미지를 구사한다. 우리는 모래와 먼지가 남긴 궤적을 따라가면서 그 안에 억압되고 숨겨져 있던 자연의 상태와 만난다. 이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는 도시의 부유물을 잠시 흐르게 하고 또 잡아 두면서 물질의 원초적 기억을 깨우는 일이다. 벽이 세워지고, 그것을 지지하기 위해 물질의 변이를 겪기 이전의 상태는 문명적 기능과의 결별인 동시에 자연적 논리로의 회복과 관련된다.
하진이 도시 안 틈새의 찌꺼기와 같은 모래와 먼지를 이미지의 질료로 선택한 것은 벽으로 상징되는 대도시의 삶 속에서 숨겨지고 탈락된 것들을 찾아나서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거대한 장소가 생성되고 허물어지는 과정 속에서, 모래와 먼지는 우리가 호흡하는 세계의 속성에 대한 환유가 된다. 벽돌과 블럭을 이어 배타적 공간이 생성되고, 물질의 소비와 변형에서 탈락된 부산물들은 도시와 우리 사이를 유령처럼 이주하며 조금씩 세계를 변형시킨다.
예컨대 <시멘트 가든(cement garden), 2018>은 두 개의 사각형 틀 안에 모래가 쌓여 있다. 하나는 조금 우뚝 솟고 하나는 평평한 이 두 모래 더미에는 사방에서 날아온 여러 잎들과 먼지가 섞여있다. 바람과 날씨에 흘러내리거나 패일 이 더미는 인공적인 단단한 사각의 프레임과 전혀 다른 비정형의 상태에 있다. 자연과 인공의 중간에서 역시 자연과 인공의 힘과 겨루는 사물들은 모두 모래와 같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할 수밖에 없는, 그리하여 어떤 소멸과 늘 맞닿아 있다.
이 소멸은 두 가지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먼저 벽의 세계의 이전, 자연물로서의 모래는 고정될 수 없는 순환의 논리 안에서 운동한다. 잡으려면 곧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이 그것은 보이지 않는 융합과 분열을 거듭하며 거스를 수 없는 소명을 수행한다. 그리고 <남겨진 산수>와 <결>은 자연과 인공의 중간 상태, 즉 벽의 세계의 이전과 이후의 사이 시간 에서 포착된 소멸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그 어떤 패턴과 규칙도 없이 그저 중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세계는 공교롭게도 자연의 어느 세계를 상기시킨다.
그러나 <비질(brooming), 2018>에서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소멸이다. 이 단 채널 비디오에는 바닥에서 작은 움직임들에 미세한 변화를 거친 <잔여>를 작가가 비질로 깨끗이 쓸어 담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소멸이다. 벽의 세계 이후, 사회의 패턴 속에서 남은 잔여물은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진다. 영속하지 못하는, 그리고 순환할 수도 없는 <잔여>의 시간은 그렇게 불현듯 쓸려 나간다. <비질>의 행위는 도시의 불완전한 구조가 겪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을 함축하면서, 오늘의 세계가 제안하는 소멸의 방식에 대한 허무와 망각의 알레고리로 안내한다.
그리고 이 모두는 이 전시의 제목처럼 고정 불가능한 이주의 형태로 존재한다. 하진은 도시의 물리적 산물을 매개로 동시대의 외부세계가 지닌 구조적 모순에 대해 언급해 왔다. 그의 작업과 마주하며, 도시의 촘촘한 구조가 뿜어내는 모래와 먼지의 이탈이, 결국 오롯이 우리의 것이 되지 못하는 불안한 삶의 지표임을 감지하게 된다. 자연과 인공 사이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이동하는 동시대의 한 형태가 지금도 도시의 색과 풍경에, 그리고 여기 바로 옆에서 모래처럼 유동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