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 Merged Layers >
강현선 개인전
2023.8.25-2023.9.3
-전시 서문-
우리는 서사가 목적으로 하는 긴장과 해결의 경험이나 언어의 논리로 답을 낼 수 없는 질문 앞에서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고, 종종 그 노력 자체가 예술의 형식이자 주제가 되기도 한다. 강현선의 <Merged Layers>의 중심에 있는 ‘Tracing Endeavor’와 ‘Unknown Mariner’가 바로 그 좋은 예다.
작가는 신항로를 개척한 대영제국 시대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과 세계를 항해한 영국인 여성 케이틀린 스미스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항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인간이 마주하는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를 보여준다. 두 작품에서 케이틀린은 주어진 현실이나 가치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상적인 개인을 상징한다. ‘Unknown Mariner’에서 가상의 디지털 아바타 ‘루시’가 투영하는 자아와 루시에 투영된 케이틀린의 정체성으로 자신을 탐구하는 작가는, 케이틀린의 경험을 루시의 목소리로 들려주며 주체적 개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매체와 인공지능 등을 다루는 작가는 타인의 감정을 자신과 연결시켜 자신을 대상화 시키고, 낯선 발길로 자신이란 세계를 탐험한다.
작가는 우연히 한 지인으로부터 어떤 영국의 노년 여성이 직접 보트의 키를 잡고, 선체에서 생활하며 세계를 일주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작은 어선 크기의 배로 자연과 사투를 벌이며 7년에 걸쳐 지구를 한 바퀴 완주한 케이틀린 스미스의 이야기는 작가의 의식 깊은 곳에 질문의 씨앗을 뿌렸다. 일흔 살을 바라보는 노년의 여성은 어째서 안락함을 버리고 바다로 향했을까? 바다에서 그녀가 찾고자 한 것은 무엇이며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애초에 바다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한들, 인간은 왜 그런 것을 구하는가? 인간은 무엇이고 작가와 그녀는, 또 당신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한편 작가는 영국의 모험가 제임스 쿡 선장에 대해 종종 생각해왔다. 1768년 제임스 쿡 선장은 금성의 일면통과(transit of Venus)를 관측하기 위해 타히티를 향해 돛을 올렸고, 이는 훗날 오스트레일리아라 이름 붙여진 전설 속의 남방대륙을 탐사하기 위한 위한 4년간의 항해로 이어졌다. 쿡 선장의 항해는 이후 영국이 식민지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와 함께한 박물학자가 항해에서 수집한 식물들은 영국의 왕립식물원인 런던의 큐 가든으로 옮겨져 전시되었다. 큐 가든이 이후 당대 세계 최고의 식물원으로 자리잡은 데는 제임스 쿡 선장의 항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쿡 선장의 첫번째 항해에서 함께 했던 배의 이름은 ‘HMS(His Majesty’s Ship) Endeavour’였다. 현대의 영한 사전에서 ‘Endeavour’는 ‘노력’이라는 의미로 대표되지만, 당시엔 ‘최선을 다해 맡은 (누군가가 맡긴) 의무를 다하는 일’을 의미했다.
작가는 케이틀린 스미스의 모험을 전해 듣고 쿡 선장의 첫번째 항해를 떠올렸다. 케이틀린의 여정은 유럽인 최초로 호주 동부를 발견하고, 뉴질랜드의 지도를 제작한 쿡 선장의 자취와 많은 부분이 겹쳤으며, 이는 마치 바다의 길을 열어준 선조의 자취를 따라가는 듯 느껴졌다. 작가는 케이틀린과 화상회의 어플리케이션 줌을 통한 인터뷰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케이틀린과의 인터뷰 영상과 작가가 방문한 런던의 큐 가든의 정경을 편집한 ‘Tracing Endeavor’에선 필연적으로 제임스 쿡 선장이나 과거에 새로운 섬들을 발견했던 다른 모험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해 그녀의 이야기와 중첩되고 교차한다.
간혹 우연은 작품에 새로운 층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작가가 큐 가든의 촬영을 위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날 케이틀린은 서울에 도착했다. 어쩌면 대면 인터뷰가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두 사람은 미리 정해진 각자의 여정 탓에 상대방의 고국에서 줌으로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또한 인터뷰 당일에는 70년간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가 발표되었다. 이런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탓에 작가와 케이틀린의 줌 인터뷰는 버킹엄 궁전 앞에서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는 군중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 챕터가 닫히고 새로운 세상이 이제 막 열리려던 찰나에 두 사람은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인간 행위의 본질적인 목적에 대해 먼 물리적 거리를 두고 소통했다.
VR 영상에 등장하는 인간의 형상 ‘루시’는 작가가 자신을 본 따 만든 페르소나다. 작가는 여러 전작에서 자신이 내면에서 느끼는 자아와 외부의 환경에 반추된 정체성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루시라는 아바타를 만들고, 이 아바타에 가상의 정체성을 투영시키는 과정을 통해 해소해왔다. 작가가 실제를 참조해 창조한 세계 속에서 루시는 익명의 인물이나 역사 속의 인물이 되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고, 새로운 자아를 가진 인물이 되었다. 신작 ‘Unknown Mariner’에서 ‘루시’는 케이틀린 스미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전작과는 조금 다른 양태를 보인다. 전작에서 루시의 등장은 종종 작가 내면의 갈등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치유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신작은 전작과는 달리 새로운 세계를 항해하고, 탐험하는 주체적인 모습을 띈다.
케이틀린의 이야기에 담긴 자아는 주어진 현실이나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상적인 개인의 상징’으로, 가상의 디지털 아바타 루시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며 새로운 탐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루시를 창조한 작가는 루시에 투영되고 루시가 투영하는 자아와 정체성을 도구로 자신이란 세계를 탐험한다. 이 탐험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어떤 노력보다 주체적이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상적인 개인의 역할에 충실하다. 현실의 불합리 속에서 우리가 종종 도달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이상적인 개인’이 되기 위한 끈질긴 탐험은 작품 안에서 참조된 자아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이는 예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인 이미 이미 벌어져 비가역적인 역사에 대한 해석, 내적 자아와 정체성의 문제 등을 새로운 기술의 도움으로 탐구해보려는 작가의 노력이다. 기술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작가에게 쿡 선장의 ‘HMS Endeavour’호가 되어 어느 땅으로든 가 닿게 해줄 수는 있을 것이며 그것은 그 땅의 가치와는 상관 없이, 곧 성취다.
‘Unknown Mariner’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케이틀린의 이야기에서 따왔다. 작가가 발췌한 이야기는 끈기 있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 담겨있다. 항해의 목적은 ‘항해를 성공하는 것’ 그 자체이며, 이는 삶을, 자아를, 정체성을 탐험하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것들을 발견하고, 기술을 새롭게 하는 일은 제임스 쿡처럼 혹은 케이틀린처럼 도전하고 인내하며 성취해 스스로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작가는 이 탐험이 당신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다. VR에서 ‘루시’는 작가, 현대미술을 하는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전제로 만들어졌으나, 이후 케이틀린의 역할을 학습해 행하도록 지시받았다.(아래 내용 참조) 케이틀린의 정체성을 학습한 인공지능은 새로운 자아를 생성하고, 새로 탄생한 자아는 당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답변에 따라 인공지능은 관객과 자신(‘루시’ 혹은 케이틀린 혹은 케이틀린이 투영된 루시)의 추억을 만들고 이를 이미지로 만들어 액자 속에 표현한다. 바다 속 장면에서는 전지적 시점의 목소리가 등장해 관객이 경험하는 상황을 묘사하며 루시에게 투영한 케이틀린, 케이틀린의 목소리를 내는 인공지능, 이 모든 상황을 조율하는 작가의 관계가 형성된다. 작가는 이 관계가 “인간 내면의 주체, 주체가 만들어내는 자아, 그 자아를 완성시키는 외적 요인의 구조”와 병치된다고 보고, 이를 통해 자신이 감각하는 자아와는 다른 측면이나 특성을 가진 새로운 자아를 창조한다. 이 창조의 과정은 자기 참조적이며 동시에 자기 탐험적이다. 전시장 벽면에 투사되는 배의 형상은 케이틀린 스미스와 세계를 항해한 선박 ‘Impala’의 이미지다.
글 : 박세회(<에스콰이어> 피처 디렉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