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NOT CONFORMED>
Antonietta Grassi, Maria Ezcurra, 김시연, 안세은
2026년 5월 29일 – 6월 18일
10:30- 18:00 (일요일 휴관)
오프닝: 2026년 5월29일 17:00
《NOT CONFORMED: Four Women Carving Time》
여성은 오랫동안 가정 안의 돌봄 역할을 담당하는 것에 머물러 있었다. 교육을 받고 경제활동과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 점점 그 외연이 확장되고 위상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상에 일차적 책임을 지곤 한다. 사실, 결혼 출산 육아 등의 변화로 여성은 사회적으로 전문성이 사장되거나 개인적으로 소외 불안 우울 등의 심리적 위축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경력이 단절되는 경험을 하는 여성을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일상이며, 예술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환경의 변화,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순응하지 않는 네 명의 여성 작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은 거창한 선언이나 파격적인 횡보가 아닌, 느리고 미세한 변화에 주목하며 평범한 일상이 어떻게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저항의 형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모두 어머니이자 주부로서 가족을 돌보는 일상을 병행하며 자투리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 자신만의 미술적 감각과 리듬을 회복해 회화, 자수, 조각, 설치 등에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담았다. 매체는 서로 다르지만, 살아온 경험과 기억을 손의 감각에 밀착된 노동을 반복하고 인내하면서 만든 이들의 작업에는 긴장감, 친밀감, 돌봄, 가정적 분위기가 공통으로 흐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모든 게 제자리에 놓인 듯 고요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오래 들여다보면 그 표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동요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순응하지 않는 마음이다.
안토니에타 그라시(Antonietta Grassi)는 회화를 기억과 감각, 존재가 직접 연결되는 언어로 이해한다. 린넨 위에 첫 얼룩을 만들고 천이 물감을 흡수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층을 쌓아가는, 매우 직관적인 태도로 작업한다. 화면은 생각과 물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장소가 되며, 회화는 곧 경험과 존재의 체화된 형태로 확장된다. 여성 작가로서 축적된 기억과 감정, 신체적 감각이 재료와 직접 맞닿는 과정에서 불안정한 조화를 찾으며 섬세한 회화적 언어를 보여준다.
마리아 에스쿠라(Maria Ezcurra)는 직물, 실, 연필 등 재활용 재료를 사용하며 반복적이고 명상적인 제작과정을 통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과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여성의 몸이 역사와 문화적 기대, 돌봄과 생명의 무게를 함께 짊어져 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작업은 몸과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흔적으로 기능한다. 신축성 있는 나일론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하게 당겨, 긴장과 저항, 취약함과 견딤의 상태를 보여준다.
김시연은 어린 딸의 학습 과정에서 나온 지우개 가루와 연필 찌꺼기를 수집해 실과 조각 작품으로 바꾼다. 기능적 도구였던 지우개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시적인 사물로 변모하고, 작고 연약한 재료가 오랜 시간의 헌신을 통해 거대한 존재감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여성의 노동과 감정이 지닌 힘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안세은에게 도일리는 여성의 삶에 내재된 연약함, 지속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장치이다. 작가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적응해야 했던 과정에서, ‘스스로 인식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의 긴장감을 경험했고, 연작 <우리가 사랑을 이야기할 때>를 통해 소통의 불안정성을 애도한다. 주문처럼 새겨진 문장들은 도일리 같은 소모적인 사물의 형상으로 변모하며, 빠르게 형성되었다가 쉽게 해체되는 현대인의 관계에서 느끼는 허무를 시각화한다.
네 명의 작가들은 여성의 노동과 감정, 그리고 반복되는 사적인 일상의 시간을 단순한 희생이나 헌신의 서사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소하고 연약한 것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힘을 발견하고 시각화한다.







